2004년 2월, 1학기 복학을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공부도 하면서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좋은 일이 없을까 하고 찾던 중 영어 출판을 하신다고 하는 분의 구인광고를 학교 홈피에서 발견했다. (그때까지도 그냥 "어떤 선배님"에 불과했었다. 사람들은 만나서 인연을 맺기 전까진 모두가 남이니까.)
지원서를 내고 연락을 기다렸다.
전화가 걸려 왔고 통화를 했는데 느낌이 좋아 보였다.
또박또박한 발음에 상냥한 목소리 그리고 친절한 설명을 듣다 보니 이 일을 꼭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나도 성심성의껏 답했고, 꼭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씀 드렸고, 며칠 뒤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3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고, 더 나은 사람을 찾으셨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 오후, 인터넷 검색 중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5월 28일에 모의유엔총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군대 가기 전에도 이 행사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아직 국제기구나 유엔에 별 관심이 없었기도 했고 아직 아는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도전해 볼 엄두도 내지 않았었다.
하지만 2004년 1학기에는 뭔가 학교 공부와 아르바이트가 아닌 다른 일에 도전해 보고 싶어졌고, 그래서 자연히 한국외대 모의유엔총회(himun.or.kr) 소식을 접했을 때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원했다.
3개월간 주2~3회의 세미나 모임과 정책보고서 준비, 그리고 본격적인 총회 준비 끝에 드디어 5월 28일, 제28회 HIMUN의 막이 올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로 나온 나.
과외를 두개 하면서 그리고 학교 공부도 하면서 하는 총회 준비라서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은 밤을 새워야 했지만, 총회가 매끄럽게 진행되고, 또 고맙게도 UNICEF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상을 수상하고 나니 그동안의 3개월이 고생스러웠다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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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동안 나를 정말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만들었던 주요 원인이었던 총회가 끝이 나고 나니 당장 29일부터 눈에 띄게 한가해졌다.
물론 여전히 과외는 두개를 하고 있었고 과외 끝나고 1시간만이라도 연습실 가서 몸을 풀어야 개운했기 때문에 전혀 안 바쁜 건 아니었지만, 뭔가 새로운 것이 더 있어야 했다. 뭔가를 찾고 싶었다.
29일, 30일 이틀간 여기 저기 인터넷 싸이트들을 많이 검색해 보았지만, 그다지 끌리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31일, 10시 15분부터 30분까지 15분간 있는 공강시간에 학교 PC실에 들러서 기말고사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찾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요란한 진동으로 울려댔다.
2월에 통화했던 '그 선배님'이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아직도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를 물으시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이 있을 수 있었을까.
바로 이틀 뒤인 6월 2일에 나는 연신내 사무실에서, 지금은 '실장님'이라고 부르며 매일 함께 일하고 있는 그 '어떤 선배님'과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벌써 1년 반이 흘렀다.
영어 출판일... 아직도 잘 모른다면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배웠고 그동안 공부도 많이 할 수 있었다. 나중에 나한테 정말 큰 밑거름이 되어 줄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땐 어떻게 된 것이었을까?
오랜 출판 회사 근무 경력을 접고 프리랜서로 새롭게 시작한 실장님은 프리랜서 사무실을 연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남학생을 쓸까 여학생을 쓸까 고민하시다가 여학생만 둘을 쓰기로 하신 것이었다.
아무래도 여자 세 명이 있는 것이 더 편안하셨단다.
그러다가 그 중 한 명인 정아씨가 1년 반 동안 외국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고 준비하는 바람에
새로운 사람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이런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Miracles DO happen!!
2005년 12월 10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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