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5일 토요일

연신내

연신내에 다녀왔다.

한 장소가 한 개인에게 갖는 의미라는 것은 얼마만큼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게 연신내는 단순히 지난 2년 동안 영어출판 편집 일을 해 왔던 장소로서뿐 아니라, 내가 내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실장님을 만나 함께 일을 해 온 곳이며 앞으로 실장님이 이사를 가시면서 사무실을 옮기지 않는 한, 서울에서는 고려대학교 일대와 함께 가장 친숙하고 의미 깊은 동네일 것이다.


6호선을 타고 한 번에 갈 경우에는 지하철로만 52분이 걸리고, 한 번 갈아타고 좀 더 빨리 가거나 운이 좋아 바로 도착한 시내버스를 타고 간다고 해도 걷는 시간까지 대략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곳에 위치한 사무실이지만 한 번도 멀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연신내까지 오가는 길은 나에게는 언제나 평소에 못 읽었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계획을 짜는 시간이었기에 오랜 시간 지하철을 또는 버스를 타고 있었어도 낭비된 시간이라고는 없었다. 1년 정도 Handheld PC인 모디아를 사용할 때에는 거의 글을 쓰는 시간으로 할애했고, 그 때 썼던 글들이 지금도 나로서는 보배같은 기억의 창고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서울 어디로 출퇴근을 하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굳이 연신내였기 때문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할 이유도 없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신내가 내게 특별한 것은 유난영 실장님을 만날 수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고, 유 실장님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쿨한 본보기가 되어주신 분이고 평생을 두고 내가 은혜를 갚아야 하는, 나의 '보스'이자 '선배'이자 스승님이시다. 사람을 믿는 것, 때로는 사람을 다루는 것, 그리고 인생을 즐기는 법, 위기를 다스리는 방법 등을 모두 말이 아닌 실천으로 가르쳐 주신 분이다.


이제 한예종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그 일을 하면서도 출판 편집 작업을 계속 할 예정이지만 혹시나 그래서 내가 필요한 노력을 덜 한다거나 편집 일을 적당히 처리하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언제나 처음 마음 그대로 일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럴 땐 항상 2004년 여름의 어느 날 아침 8시반에 처음으로 연신내에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했던 그때를 떠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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